강진의 귤동 유배지에서 쓴 다산의 대표적인 저작으로, 지방행적의 지침서라고 할 수 있다. 실무적인 내용뿐 아니라, 백성 중심의 정치제도 개혁과 지방행정의 개선을 도모한 정신이 드러난다. 특히, 당대의 실상과 관행을 파고들어 병폐의 원인을 찾고 치유책을 구체적으로 고민했다. 백성을 다스리는 목민관이 해야 할 임무와 자세를,다양한 역사책과 사례들을 참고해 정리하였다. 이 책은 방대한 분량에서 핵심적인 내용만 뽑아 가상의 인물 '재용'과 다산 선생과의 대화체 방식으로 재구성했다.
『목민심서』는 공직자나 법조인은 물론 한국인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권장 도서 목록에 이름을 올리곤 한다. 오랜 세월 동안 『목민심서』가 우리 사회에서 관심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목민심서』의 저자 정약용이, 궁형을 받고 사기라는 명저를 남긴 사마천처럼 18년이라는 긴 유배 생활을 겪으며 방대한 저술을 남긴 비운의 대학자였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아니면 주자 성리학 일변도의 폐쇄적인 학문 분위기를 벗어나 발전하고 있었던 새로운 학풍인 실학을 집대성한 사상가였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목민심서』가 담고 있는 내용 그 자체이다. 이 책을 읽는 이들은 조선 후기 관리와 일반 백성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일화를 보면서 오늘날 우리 사회와 묘한 동질감을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지방관인 수령을 비롯한 조선의 관리들은 어진 정치를 강조하는 유학의 가르침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백성들의 삶은 팍팍하기 그지없었다. 오늘날 다수의 한국인들 역시 정치 지도자, 공직자들의 현란한 수사에도 불구하고 삶의 질이 나아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한다.
다산은 이 책 전체를 통해 지방관이 부패에 초연한 청렴한 관직자가 되기를 희망한다. 또한 백성들의 마음을 진정으로 헤아리고 아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러한 그의 바람은 절차적 민주주의가 확립되고 부패를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발전한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도 여전히 현실이 아닌 희망으로 남아 있다. 그래서 목민심서는 계속해서 권장 도서가 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서 목민심서를 공직자를 위한 지침서나 교훈서 정도로 축소해서 이해할 필요는 없다. 이 책에는 조선 후기 사회 현실이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으며 잘못된 관례를 바로잡기 위한 정약용의 개혁 사상이 곳곳에 녹아 있다.
더구나 책의 제목에 심서(心書)라는 말을 넣어 현실 개혁에 참여하고 싶지만 오랫동안 유배되어 있던 몸이라 그것을 마음에 간직할 수밖에 없음을 표현한 그의 비통한 심정도 더듬어볼 수 있다. 『목민심서』라는 고전을 통해 조선 후기의 역사를 읽고, 한 위대한 사상가의 현실 개혁 의지를 읽고, 더불어 가난하고 힘없는 백성들의 고통을 시대를 초월해서 읽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리하여 당시로부터 이백여 년이 지난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서도 기억해야 될 가치를 이 책을 통해 고민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 권내현 (고려대 역사교육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