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으로 인해 겉으로 잘 드러내진 않지만, 보다 넓은 세계로 나아가고자 하는 열 세살 짜리 농촌 소년 훈필이가 다양한 사건 속에서 펼치는 열정과 영혼의 방황을 섬세하면서도 따뜻하게 그린 성장소설이다.
작가의 고향인 진도를 배경으로 주인공 소년이 사춘기 시절에 겪는 농촌이나 학교에서의 현실적 체험, 사랑과 추억, 낯선 세계를 향해 떠나는 가출, 희망, 성공을 향한 풋풋한 열정 등을 흥미 있게 써내려간 소설이다. 인생의 비밀을 엿보고 싶어하며, 인간으로서 경험해야 할 것들을 조금 일찍 경험하고자 하는 호기심, 배짱 등 사춘기 소년의 성장 일기를 향토성 짙은 문체로 구수하게 펼쳐나간다.
박상률의 장편 소설 <봄바람>은, 섬마을에 사는 한 소년이 일련의 고통과 시련을 통해 사회에 발을 들여놓는 과정을 그린 일종의 ‘성장 소설’이다. 작품의 제목을 감싸고 있는 ‘봄’은 새롭게 시작하는 젊은이의 꿈과 다짐을 뜻하고, ‘바람’은 한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으려는 젊은 날의 충동과 그에 따르는 시련을 강하게 암시한다. 결국 우리는 ‘바람’을 따라, ‘바람’을 타고, ‘바람’을 넘어, ‘봄’에 가 닿는 것이다. 그리고 ‘바람’에 따르는 고통과 시련을 잘 극복한다면 마치 ‘봄’처럼 희망에 찬 성장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주인공 ‘훈필’은 열세 살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이다. 봄이 되면 그가 사는 섬마을에는 뭍으로 나가려는 사람들과 섬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대조적으로 나타난다. 농사 빚에 몰린 훈필 아버지는 학비 마련을 하라고 훈필에게 염소를 사 준다. 하지만 훈필의 꿈은 염소의 죽음으로 흔들리게 되고, 훈필은 자신이 짝사랑하는 은주 때문에 고민하고 친구들에게 받는 따돌림으로 괴로워하다가 뭍으로의 가출을 결심하고 실행한다. 하지만 생각하지도 못한 시련만 겪은 채 다시 섬마을로 돌아온 훈필은, 새롭게 성장한 자신을 발견하면서 섬마을 땅을 디딘 채 새로운 꿈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아프기만 했던 성장통이 가라앉고 그만큼 자신은 커다랗게 성장했다는 생각으로 나아간다.
여기에서 주인공 훈필이 택한 공간인 ‘섬’과 ‘뭍’은 매우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가진다. ‘섬’이 그의 유년이 배어 있는 평온하고 일상적인 삶을 상징한다면, ‘뭍’은 각박하고 황폐한 현실의 삶을 상징한다. 작가는 이 두 상징적 공간을 가로지르면서 새로운 세계에 눈떠 가는 한 소년의 정신적 성숙 과정을 보여 준 것이다. 그래서 훈필이 겪은 ‘사랑’과 ‘가출’과 ‘꿈’의 흐름은, 그 자체로 한 영혼의 내면적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이 되는 것이다.
아름다운 섬마을 풍경 묘사와 다채로운 방언 활용은 이 작품의 분위기를 서정적으로 그려 냄으로써, 작품을 더욱 깊이 있는 소설로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1997년에 발표된 이 소설의 구체적인 공간적 배경은 작가 박상률의 고향 진도이다. 그래서 훈필은 작가 자신의 자화상이기도 할 것이다. 우리는 작품 속의 훈필의 모습을 보며 우리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또 청소년기를 회상하고 기록함으로써 이제 성인이 된 자신을 치유하려는 작가의 언어를 따라, 한 영혼의 고민과 방황과 성숙의 이야기를 매우 섬세하게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더욱 넓고 가파른 세계로 나아가려는 한 소년의 꿈이 영글어 가는 것과 함께, 우리의 상처도 방황도 꿈도 다짐도 환하게 우리 마음속에서 출렁이는 것을 문득 느끼게 될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우리가 <봄바람>을 읽고 느끼는 시간은 충분히 아름답고 의미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유성호 (한양대학교 국문과 교수)
